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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세상

계엄령 문건 논란속 노출된 ‘한국군 벙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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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의 이른바 ‘계엄령 문건’ 논란이 확산되는 와중에 예상치 못했던 군내 벙커의 세계가 드러났다. 지난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기무사의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통해서다.  

  

서울 관악산 인근에 자리한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문서고,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청사 지하의 B-2 문서고, 육ㆍ해ㆍ공군 본부가 자리 잡은 충남 계룡대의 U-3 문서고가 계엄령 논란 속에 노출됐다. 이 세 곳은 유사시 지휘소인 벙커다.  

  

기무사는 지난해 3월 계엄을 검토하는 이 자료를 만들면서 이들 벙커와 함께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별관ㆍ구 사이버사령부ㆍ구 방위사업청ㆍ전쟁기념관을 준(準) 벙커 개념으로 보고 계엄사령부 후보지로 저울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되는 B-1 문서고를 방문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되는 B-1 문서고를 방문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기무사는 구체적으로 이들 7개 후보지를 공간, 통신, 위치, 경계, 지원시설 등 5개 기준으로 나눠 비교 분석했다. 공간은 수용 내용과 능력, 통신은 C4I체계(전술지휘자동화체계) 유무, 위치는 수도권과의 접근성, 경계는 경비 수월성 등을 의미한다.   

  

 

○(적합), △(일부 부적합), X(부적합)로 매겨진 이들 항목에서 모두 적합 판정을 받은 곳은 수방사 벙커인 B-1 문서고가 유일했다. 기무사는 B-1 문서고에 대해 “계엄사령부 구성에 필요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서울에 있고, C4I에 기초한 전장 데이터가 집결돼 있으며, 수방사로부터 삼엄한 경계 등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방사 벙커는 향후 전시작전권 전환을 대비해 지난해 확장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격은 물론, 북한의 EMP(전자기파) 공격에 대비한 방호 설비도 완비했다. 지휘부가 몇 개월간 나오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한 소식통은 “대통령, 장관, 각군 참모총장의 이름표가 부착된 회의실이 이곳에선 언제나 운영된다”며 “평시에도 전시 상황 때 국가의 두뇌 역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되는 곳이 바로 수방사 벙커인 B-1 문서고다.   

  


B-1 문서고는 전시 대통령 집무실까지 마련돼 있어 군 내에선 ‘대통령 벙커’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기무사가 계엄을 준비하면서 당시 청와대와 교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다. 계엄령 문건 작성을 주도한 측이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접 지휘를 전제로 해 이 장소를 골랐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전시 상황에서 대통령이 주둔하는 벙커에 계엄사령부를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계엄을 검토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용도로 만들어진 벙커가 탄핵에 따른 소요 사태 대비용으로 검토된다는 자체가 슬픈 현실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합참 벙커인 B-2 문서고는 공간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합 평가를 받았음에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됐다. 기무사는 “합참이 평시 작전때 사용해야 하는 장소”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계엄사령부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합동참모본부 벙커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합동참모본부 벙커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B-2 문서고는 평상시에도 합참 상황실 역할을 하는 만큼 통신 등 각종 시설과 보안이 뛰어나다”며 “그럼에도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 대장을 상정한 기무사가 계엄사령부를 합참 건물에 들이는 게 마땅치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계엄사령관이 합참의장이라면 B-2 문서고가 1순위로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는 국방부 별관을 2순위 장소로 꼽고 C4I 체계 외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계룡대 벙커인 U-3 문서고에 대해서는 C4I가 일부 미흡하고 위치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구 사이버사ㆍ방사청, 전쟁기념관은 후순위로 밀렸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대통령 벙커인 B-1, 합참 벙커인 B-2 문서고 2곳을 놓고 문건을 작성한 측에서 전자를 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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