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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세상

군사 반란, 쿠데타 12·12 사태 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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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전 오늘!! 

잊어서는 안 될 12·12 사태가 있었던 날이다.

당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많았지만, 혁명이였다고 주장하는 이도 많다.

이것은 쿠데타(군사 반란)일 뿐 그 어떤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1979. 12. 12 (38년 전)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 승인 없이 

육군 참모총장,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으로 12·12 군사 반란, 12·12 사태로 불린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살해당한 그 시점

김재규는 연회장 내 차지철을 향해 '건방지다!'며 총을 발사하였다.

또한 '뭐하는 짓들이냐!'며 소리치는 박정희의 오른쪽 가슴에 두 발을 발사하였다.

김재규는 이후 도망쳤고, 차지철은 화장실로 대피했으며, 박정희는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대통령의 자리를 최규하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하며,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이끌게 되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인원을 보직 이동 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 시작

전두환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로 한 하나회가 집합하였고,

작전 10 시간만에 반란군(하나회)의 승리로 쿠데타가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1979년 12월 13일, (하나회 반란군의 승리)

사건 이후 정승화 총장은 고문을 받고,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 당했다.(17계급 하락)

이후 '신군부'를 구축한 후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유학성 국회의원, 차규현 교통부 장관 등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전두환, 대통령 선출

1980년 5월17일 전두환은 노태우 등에게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시국수습방안’에 대한 찬성 의견을 주도하도록 했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의 의견을 내세워 국무총리와 대통령에게 계엄확대, 비상기구 설치 등을 실시하도록 강요했다.


결국 같은 날 비상계엄 전국확대 되면서 국회가 군으로 포위된다. 

이후 5월18일 0시에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다.

이날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서는 전남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신군부의 쿠데타적 조치에 항거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정권, 12·12 사태의 주동자 체포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불법진퇴,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목적살인, 법률위반 등 13개의 죄목 적용

1심 : 전두환 사형, 노태우 유기징역 22년 6개월

항소심: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유기징역 17년


요즘 시대의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 일 것이다.

12·12 사태는 역사적으로 배우기는 하겠지만 

간략히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많을 것다.

오늘이 12월 12일인 만큼 재조명 되어 재대로 알아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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